눈을 뜨자마자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시간을 정해준 건 어디까지나 손님 밀집도를 낮춰보겠다는 의도일 터.
나처럼 여독으로 시간을 지나치거나, 배가 몹시 고파 일찍 식당을 찾거나, 여러 경우의 수는 발생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아무튼 늦은 나도 그랬지만, 내 시간표를 받는 리셉션니스트의 표정에서도 아무런 동요를 찾을 수 없었다.
눈을 돌리니 어제저녁식사와는 또 다른 메뉴가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정갈해 보였다.
메뉴는 딱 있어야 할 것들이란 생각이 농후했고, 맛도 다 좋았다.
그중에서도 낙농업이 발달됐다는 홋카이도 명성대로 유제품들이 맛이 좋았다. 예를 들어 스무디 같은 거 말이다. 너무 맛이 좋아 난 스무디를 두 잔이나 마시고 말았다. 물론 아이스크림도 빼놓지 않았다. 아침식사임에도.
식사를 마친 나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의 계획은 일단 노보리베츠 온천 마을을 둘러보고 가능하면 쇼핑도 하고, 또 출출해지면 간단한 점심도 해결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잡았다.
그전에 먼저 지옥계곡이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된 곳을 찾아봐야 했다. 즉, 진한 달걀 부패한 냄새와 함께 거품을 내며 끓어오른다는 온천의 모습 말이다.
해서 난 호텔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어제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깐 들러본 편의점에서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아니라면 아닐 그런 물건 하나를 발견했었다.
아이젠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누가 아이젠을 신고 산을 오르지?' 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고, 그냥 신발만 신고 지옥계곡으로 향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끄럽고, 주위엔 아무도 안 보이고, 안전장치 또한 그리 신박해 보이지 않았으니!
난 다음 기회를 속으로 다짐하면서 다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냥 찻길을 이용해 아래로 뚜벅뚜벅 내려갔다.
평소 걷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이 마을 한 바퀴 도는 건 일도 아니었다.
조그만 마을 여기저기 보이는 일본 스러움, 호텔 몇 군데와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팔고 있는 가게를 보며 역시 일본 답다는 생각이 짙어갔다.
그중엔 도깨비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여기저기 보이는 도깨비 모습도 한 몫했다.
뭐든 이름에 충실한 그들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줬으니 말이다.
눈보라가 휘날려 가끔 가게 안으로 들어가 몸도 녹이다가 물건들도 구경하다가 쇼핑도 하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점심은 거르고 호텔로 돌아왔다.
번거롭지 않고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도 그랬고, 무엇보다 나 자신 한적하면서도 아늑함이 느껴져 그게 좋았던 산책이었다.
호텔방에서 조금 쉰 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잠깐 가족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간단하게 주전부리한 다음 대욕장으로 향했다.
눈 오는 날 노천탕의 낭만은 또 참기 어려운 것이라 한시라도 빨리 느껴보고 싶었기에.
온천을 즐긴 후 그날 저녁식사에선 전날 못 먹어본 솥밥과 양고기를 먹어봤다.
아무래도 내게 양고기는 버겁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즉각적으로!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서 열심히 솥밥에 반찬을 곁들여 나머지는 깨끗이 비웠다.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마지막으로 온천하기 위해 이번엔 내가 묵고 있는 건물 대욕장으로 갔다.
노천탕이 있는 곳에 비해 한가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나 포함 한 두 세명 정도?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나 혼자 대욕장을 다 차지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내일이면 떠나는데 이곳을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다음엔 다른 곳을 경험해 볼 것인가?
떠나기도 전 이미 재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내 자신을 향해 어이 없는 웃음을 날리며 혼잣말을 했다.
"정말 단단히 미쳤군!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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