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이 밝았다.
전날은 한껏 기분이 좋은 날이었는데, 코토르라는 기항지가 참 맘에 들었던 것도 한 이유지만 그날 저녁 식사로 먹은 생선요리가 근래에 맛본 최고의 생선요리라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렇게 전날의 흡족함을 간직한 채 눈을 떠 보니 배는 그리스 '코르푸'를 향해 항해하는 중이었다.
오늘로 크루즈 여행 닷새째.
크로아티아 '듀브로브니크'와 몬테네그로 '코토르'에선 자유여행을 선택했었지만, 오늘 방문하게 될 그리스 '코르푸'에선 기항지 선택관광을 하기로 남편이 어제 예약을 해놓았다.
바로 '바다수영과 비치 방문'이었는데, 일찌감치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한껏 기대감에 차 극장(선택관광 인원이 많다 보니 늘 극장에서 모였다가 번호가 호명되면 하선을 해 흩어지곤 했다.)으로 향했다.
참고로 비용은 1인당 미화(셀레브리티는 본부가 미국인지라 선상에서의 모든 가격은 미화가 적용된다.) 49달러인데, 전날 배달된 선상레터와 함께 '기항지 선택관광 할인쿠폰'이 있길래 그걸 이용해 1인당 10달러를 할인 받았고, 결국 1인 39달러 합계 78달러가 들었다.
드디어 우리 번호가 호명되고 하선해 인솔가이드를 따라 버스를 탄 후 가까운 곳에서 내려 세관을 통과한 후 항구를 조금 걷다보니 오늘 우리가 타야 할 배 한 척이 정박돼 있는 게 보였다.
'어! 해적선?'
예기치 못했던 해적선의 출몰에 다소 긴장했지만 곧 우리 일행은 차례대로 배에 올랐고,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생각에 젖게 됐다(고 믿는다).
참, 그 전에 오늘의 선택관광에는 점심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사실 내가 다 준비한 것지만!)는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아침식사를 했던 뷔페에서 가져온 오렌지, 복숭아, 그리고 전날 점심을 먹으며 챙겨 놓았던 펠린과 머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 등을.
나는 여행을 갈 때 꼭 조그마한 칼을 준비하는데 칼이 있으면 어디를 가든 과일을 사서 썰어 먹을 수 있어 편하다. 해서 이번 크루즈 여행에도 칼을 지참했었고, 여행 내내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나름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왔건만 예정에 없던 점심을 받아야 한다며 잠시 한 곳을 들러 도시락을 받아들고 배는 또 한참을 달려 코르푸의 어딘가쯤 지중해에 다다렀다.
잠시 후 인솔가이드가 우리에게 물에 뛰어들 채비를 하란다.
바로 그곳이 '바다 수영' 장소라고 하면서.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와 남편도 남들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평소엔 수영을 잘만 하던 나였지만 그곳에선 왠지 두려움이 앞서 선뜻 수영을 즐길 수가 없었다.
배 근처를 배회하며 나는 가져간 고글을 착용하고 바다 아래를 한 번 쳐다본 다음 어두운 발밑이 불편해 배와 연결된 밧줄을 꼭 잡고 말았다.
남편이 왜 그러느냐고, 괜찮냐고 하는데, 그냥 불편했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왜 멀쩡히 수영할 줄 아는 내가 이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힌 건지.
결론은 이랬다. 나는 예기치 않는 상황을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사람이고,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는 것.
믿음직한 남편이 옆에 있긴 하지만 잡을 거 없는 망망대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 거 같다.
잠시 후 나는 배 위로 올라왔고, 밑에서 재미있게 수영하다 저 멀리 보이는 해안가까지 수영해 가는 남편을 촬영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돌아온 남편이 외로워보여 마음 편하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확실히 이번엔 조금 안정감이 느껴졌다.
해서 수영도 하고, 다시 바다 밑도 들여다보고, 배영도 하면서 바다수영을 즐겼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다 배 위로 올라와선 점심을 먹었다. 그리스 식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제법 맛있었다. 그리고 나눠준 쿠폰으로 배 안에 마련된 바에서 커피도 한 잔 시켜 마셨다.
배는 다시 달렸고, 나는 '이번엔 해변으로 가 재미있게 놀아야지!~' 야심차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또 바다 한 가운데 떡 배를 세우더니 다시 바다수영을 하란다.
'어? 또 바다 수영? 해변은 언제 가는데?'
인솔가이드는 아무 말 없고 궁금해진 나는 배의 선장쯤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그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해변은 갈 수 없단다. 해변 가까이 가기엔 암초가 많다나, 뭐라나 하면서.
어찌 보면 속은 셈인데, 다른 사람들 중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 한 커플만 계속 "비치에 간다고 했었는데 어찌 된 거지?"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희희낙락이다.
불편한 내 표정을 감지한 남편도 대략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영부영. 난 너그럽게 말했다. "당신은 즐겨! 난 이제 됐으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편이 바다수영을 다시 했던가, 안 했던가? 대신 난 잠깐 눈을 붙였던 거 같다.
아무튼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우린 다시 우리 배가 정박돼 있는 항구 근처로 돌아왔다.
피곤함과 바다수영을 한 뒤 샤워를 하지 못했으니 약간의 찝찝함이 어우러져 코르푸 시내를 구경하려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해서 우린 그냥 배로 돌아와 쉬기로 하곤 그렇게 했다.
크루즈에선 매일 게임 프로그램도 있고,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는데 우린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그 날의 하일라이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10시(몬트리올에선 이때 쯤 우리 둘은 다 꿈나라에 가 있곤 했었는데~)에 진행된 '아바 매니아'란 프로그램이었다!
그룹 아바를 워낙 좋아해 아바의 노래로 만들어진 영화 '맘마미아'는 물론, 뉴욕을 방문했을 때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맘마미아'까지 관람했던 우리는 이걸 놓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아 '그랜드 홀'로 향했다.
"와우!~"
크루즈 시작이후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건 단연코 처음이었다.
운집한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윗층의 한 코너에서 가라오케 기계에 나와 있는 가사를 따라 하며 함께 목소리 높여 합창했다!(이건 나만!)
그렇게 신나는 광란의 밤을 보낸 후 여전히 흥분된 마음으로 우린 룸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내가 신나하는 모습을 구경만 했을 뿐이지만 충분히 즐거워 보였고, 난 30년은 젊어진 기분으로 몸까지 흔들어대며 노래를 부르다 제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거지! 일상에서의 탈출, 그리고 약간의 대담함이 깃든 의외적인 태도를 경험하는 그거!'
오랜만에 속시원했던 밤이었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밤이었던 건 말할 것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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