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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지중해 크루즈 이야기 10. 기항지 그리스 '올림피아'(Katakolon)

겉으로 보기엔 마냥 평화스러워 보였던 올림피아.

 

지중해와 아드리안해를 넘나들며 크루즈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6일째.

지금까지는 날씨가 너무도 축복이었다. 다소 덥기도 했지만 주론 따스한 햇살에 감사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날도 우린 기항지 선택관광을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그리스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주자는 것, 또 한가지는 어제 못해 본 지중해 바다수영을 해변에서 여유롭게 해 보자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래도 그리스하면 빼 놓을 수없는 올림픽 본고장인 '올림피아 고대 유적지'를 방문해 보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비용은 1인당 미화 99달러로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두 장소라는 점과 그리스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결정했다.

 

큼직한 투어버스를 타고 우린 먼저 '올림피아 고대 유적지'(Archaeological Site of Olympia)로 향했다.

인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입장을 하고 맨 앞에 마련된 화장실에 들렀는데, 아뿔싸! 유적지의 규모에 비해 너무도 협소한 화장실이다 보니 그곳에서만 30분 이상을 지체하고 말았다.

중간쯤 가다 보면 또 하나의 화장실이 마련돼 있긴 했지만 다들 초입에 위치한 화장실을 이용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인데, 이것은 자체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듯 보였다.

 

하지만 우린 곧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즉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3000년(이것이 지어진 게 BC 8세기라고 하니!)에 가까운 역사의 현장에서 돌연 숙연함과 경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돌 하나하나의 역사도 그렇거니와, 책에서나 봤던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인 '헤라'와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렸던 실제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엄청난 감회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올림픽 스타디움
실제로 올림픽 봉화가 최종적으로 전달되었던 장소란다.
'헤라의 제단' 모습
대리석으로 장식된 신전.

 

그밖에도 각종 기념비와 조각상들, 그리고 무엇보다 초대올림픽이 치러졌던 장소에 다다러서는 유구한 세월의 힘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가이드의 설명과 더불어 보충사진을 살펴보며 감격은 더욱 고조되었고, 어디선가 제를 드리는 여사제들이 하얀 드레스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낼 거 같단 착각에까지 빠져들었다.

 

유적지를 다 돌고 근처에 밀집한 선물용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한 후 버스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낭만에 빠졌던 듯싶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검박한 집들과 텅텅 빈 건물들을 보게 되면서 난 졸지에 깨닫게 되었다.

'아! 유럽 중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여전히 고전하는 나라가 바로 그리스였지?'

하는 자각과 함께 그들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 거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난 경제학자도 아닐 뿐더러 여행객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라는 걸 핑계로 곧 머릿속에서 애써 슬픈 감성을 지우려 노력했(던 거 같)다.

그리고 곧 우리는  Katakolon의 한 해변에 도착했다. 

 

잔잔한 바다와 해변에서 흔히 보이는 야자수와 비치체어, 그리고 그 비치체어 아래서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견공까지, 모든 광경이 평화로워 보였다.

가이드가 나눠준 쿠폰을 받아들고 우린 적당한 곳을 물색했고, 가져온 비치타월로 자리를 꾸민 다음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가끔 해변을 돌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였고, 그냥 자리를 뜨기가 뭐해 선택관광 일행 중 한 명에게 해수욕하는 동안 서로 자리를 봐주자고 합의를 한 후였다.

'얼마 만의 해수욕, 아니지! 어제도 해수욕은 했었지만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해수욕이지?'

들뜬 마음으로 모래의 감촉과 바닷물의 짠끼를 느기며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곤 정신없이 놀거나 헤엄을 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비치체어로 가 준비해간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보니 받았던 쿠폰이 기억났고, 난 그걸 들고 가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맛을 본 후 '아!~ 그리스 커피가 언제부터 이렇게 맛났지?' 이렇게 감탄에 감탄을 하며 깜놀하고 말았다.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도  단연코 내 인생 최고의 커피는 몬테네그로 '코토르'에서 마셨던 카푸치노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의 아이스커피다.

코토르의 커피가 분위기 탓이 컸다면, 아마도 올림피아의 커피는 진정한 커피 본연의 맛에 기인한 찬사가 맞지 싶다. 적당히 쓴 맛에 구수함이 아주 매혹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해변에서의 시간은 많이 부족했다. 하루종일이라도 부족할 거 같지 않았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우린 버스로 향했다.

버스까지 가는 도중에도 짓다 만 건물이 눈에 사로잡혔고,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배로 돌아와 우린 짧게 낮잠을 잤던 거 같다.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거니와 해수욕에, 오며 가며 차 안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으니.

 

그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린 멋진 쇼를 관람했다.

 

내가 선택한 이 날의 생선 또한 아주 맛이 좋았다. 단지 량이 조금 작았다는 불평 아닌 불편함을 전한다. ㅎ

 

뮤지컬의 제목은 'Elysium'.

선과 악의 세력이 왕국을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부딪히는 걸 형상화한 것인데, 춤과 노래 모두 훌륭했다.

 

신선놀음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말함이 아닐까란 생각을 또 해보며 왠지 모를 미안함과 흐믓함 사이에서 고뇌했던 하루로 기억된다. 

하루하루가 발견이고, 느낌이고,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