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말했다시피 이번 여행은 내 60번째 생일을 축하해주는 의미에서 아이들이 보내준 크루즈 여행이었다.
드디어 그날을 맞았고, 기항지는 영국령 지브랄타였다.
스페인 영토에 웬 난데없는 영국령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하선했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끼리 시내투어를 결정했다.
이곳은 요새로 쓰였던 바위산이 유명하고, 그곳에 서식하는 원숭이 또한 유명하다는 걸 시내를 둘러보고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곳곳에 투어를 광고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이번 14박 크루즈 여행에서는 텐더 보트를 이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도 지중해의 바다가 깊어서인 듯 보이는데, 그만큼 기항지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배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그만큼 빠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지브랄타에서는 재승선시간이 오후 3시 반으로 일찌감치 배로 돌아와야 했다.
해서 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식사나 그런 건 잠시 미뤄야 했다.
그밖에 신경 쓰이는 일이 좀 있어 솔직히 기분이 썩 달갑지 않았다.
함께 여행 온 남편을 배려하는 맘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내 가슴속엔 커다란 동요와 상실감이 파도쳤다.
아이들이 카톡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내 기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고, 암튼 애써 감정을 숨긴 채 우린 하선해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기항지 중 항구에서 시내까지가 가장 멀었던 듯싶다. 물론 셔틀버스를 타고 간 지역은 빼고.
걸어 한 15분 이상을 가다 보니 시내에 진입하는 터널 비슷한 입구가 보였고, 관광 안내 데스크와 버스들이 운집해 있는 것도 보게 됐다.
마음이 편치 않다 보니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고 남편과 나는 인포에 가 바위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아냈고, 우린 내처 걸었다.
꽤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입구가 보였고, 그곳에서 우린 1인당 13유로를 내고 입장했다.
자연보호로(Nature Reserve Paths)라고 이름 된 그곳에는 영국 군대가 남긴 여러 유물들이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1700년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까지 더듬어보게 되지만, 요충지였던 이곳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을 받는 등 요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인 듯 보였다.
남편은 전쟁에 쓰였던 폭격이나 역사박물관에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내 맘은 산 위 바람처럼 한없이 흔들렸고, 난 보는 둥 마는 둥 그저 남편 옆을 지키며 사진 찍기에만 골몰했다.
그러다 겨우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래 내려다 보이는 비행장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것! 비행장 가운데로 도로가 뚫려있는데 비행기가 이, 착륙 시에는 도로가 닫히지만 평소엔 그냥 흔히 보는 도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그것이었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우린 커피 한잔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배로 돌아왔다.
남편이 특별히 생일을 맞아 스페셜티 레스토랑에 가겠느냐고 물었지만 그것도 내키지 않아 승선 후 처음으로 뷔페에서 저녁식사를 억지로 마쳤다.
재즈가수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날 우린 서로 별말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 역시 내 맘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지라 내 눈치를 보며 신경 쓰이지 않게 노력했고, 그 점이 고마워 나 역시 애써 내색하지 않고 평탄하게 하루를 마칠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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