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숙소는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도보로는 한 15분쯤, 택시로는 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한 마디로 역세권인 셈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투숙객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혼잡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호텔방에 짐을 풀고 우린 즉시 밖으로 나왔다.
로마는 말 그대로 곳곳이 유적지다. 유명한 유적지는 물론 고색창연한 이름 없는 빌딩 혹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로마에 도착한 첫날도 느꼈지만 이탤리 사람들은 정말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들의 노고로 지어지고 유지된 건축물이나 유적지 덕분에 오늘날 이탤리를 찾는 관강객들이 넘쳐난다는 걸 부인할 순 없을 터이다.
로마로 향하기 전부터, 그러니까 몬트리올에서부터 난 로마 관광에 대해 다각적으로 공부를 했었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어떤 동선으로 어떻게 구경을 해야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가심비가 훌륭할까를 고민했었다.
그 결과 우린 우선 로마의 탑 어트랙션(Top Attractions) 중 가장 관심이 가면서 동시에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곳부터 먼저 방문하기로 했는데, 그 첫번째 장소가 바로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Basilica di Snata Maria Maggiore)이었다.
이름다운 그곳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명성대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성당 후미에 돔처럼 생긴 모자이크 장식 중 성모마리아 대관식을 묘사한 장면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기 있는 모든 것이 다 화려하고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또한 성당을 나오면 밖에 놓여 있는 오벨리스크(Obelisk) 또한 웅장한데 이건 포로 로마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건축물이나 성당이나 하나하나 뜯어보고 면밀히 살펴보자면 하루도 모자랄 것이다. 정교하게 부조된 조각들의 의미와 그 모습을 다 찬찬히 살펴보자면 말이다.
그곳을 나와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을 보기 위해 우린 다른 성당으로 향했다.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이 바로 그곳이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또 아쉬운 건 다시 방문하게 될 줄 알고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곳을 벗어나며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원래 찾으려던 식당 대신 남편이 구글에서 검색한 식당으로 향했다.
가격이 착하면서 동시에 맛도 훌륭하다는데 도착해 보니 실내가 너무 비좁아 자리가 몇 개 없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잠시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자리가 나 안으로 들어가보니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좁다 좁다 그렇게 좁은 식당은 난생 처음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덩치 큰 미국인은 몸이 끼어 오도가도 못 할 정도의 폭을 지닌 내 생애 최소의 식당이었다!
우린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난 난생 처음보는 음식을 주문해봤다.
작은 피자쯤 되려나?
식사를 마치고 너무 더워 우린 곧바로 호스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정신을 재정비한 다음 다음 관광지로 가기 위해서 말이다.
샤워를 마친 남편과 나는 침대에 누워 다시 계획을 짰다. 어차피 로마패스를 가지고 있으니 오늘 콜로세움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로마패스 48시간, 72시간짜리는 말 그대로 48시간 동안, 72시간 동안 유효하단 말이라서 오늘 티켓팅을 해도 내일 입장할 수 있다. 해서 우리는 일단 콜로세움을 가보기로 했다.
그 전에 우린 이미 배 안에서 콜로세움을 예약(엄밀히 말해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통합권)해놓았는데 예약사이트가 다 이탤리어로 되어 있다 보니 예약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로마패스가 있음에도 남편이 걷자고 해서 처음에는 호스텔에서 걸어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 우린 버스를 타기로 맘 먹고 버스에 올랐다(이탤리는 야외에선 노마스크, 기차나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은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긴 했다.).
드디어 저 멀리 콜로세움이 보였다.
물론 로마 도착 첫날에도 우린 멀리서 콜로세움을 구경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콜로세움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우리에겐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사를 하고 있었고, 정류장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걸 보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여지 없이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예약한 걸 폰으로 보여줬더니 잘못 한 거란다. 내가 설명을 했다. 멤버쉽이라고 돼 있어서 그걸로 했다고.
그가 말했다. 더 아래로 스크롤 다운하면 로마패스가 있다고. 내가 볼 땐 분명 없었지만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했다.
우린 콜로세움 입구에서 벗어나며 망연자실한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그러다 저쪽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쪽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따라 가다 보니 우리 차례가 됐고 예약했느냐고 물어본다.
나는 예약은 안 했고, 대신 로마패스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거면 된단다.
알고 보니 거긴 통합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개별 입장할 수 있는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 입구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정과 다른 루트로 콜로세움은 빼놓고 다른 두 곳을 구경하게 됐다.
97년 나홀로 배낭여행 때도 난 콜로세움을 겉만 구경했었다. 그때 당시엔 아예 안으로 들어갈 의향이 없었고 이번엔 들어가려다 못 들어간 꼴이 됐지만, 나나 남편이나 크게 상관은 하지 않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일 듯싶다.
아무튼 우리는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을 오르며 이런 저런 걸 구경했다. 물론 그 전에 315년에 세워졌다는 '코스탄티노 개선문'(Arco di Costantino)을 지나쳤고, 이 개선문이 파리로 옮겨갈 뻔했다는 것과 이걸 본떠 파리 상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박물관에 개선문이 세워졌다는 걸 후에 알게 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터와 드넓은 스타디움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 멀리 베네치아 광장과 좀 더 멀리는 바티칸까지, 그리고 발 아래 펼쳐진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등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뷰 뷰 하는 거군!'
그곳 벤치에 앉아 우리는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도 둘러보고 그밖에 쿠리아, 셉티미우스 세레루스 개선문, 사투르누스 신전 등 여러 신전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팔리티노 언덕과 연결된 포로 로마노까지 구경하면서 이미 우린 콜로세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훌훌 날려버렸던 듯 싶다.
그렇게 저녁 어스름 무렵 우린 테르미니역 근처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젤라또를 사먹는 걸로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이런 저런 간식 덕분에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기에 호스텔로 돌아와 가져간 컵라면으로 마지막 입가심을 하면서 내일을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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