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말했듯이 로마 치비타베키아 항구에 도착해 하선하는 마지막 날(2022/9/5)엔 몸과 마음이 무척 바빴다.
아침식사를 일찍 끝내고 우린 룸으로 돌아와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다.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혹시 빼먹은 게 있나 살폈고, 첫날 승선할 때 들고 탔던 캐리어 가방에 짐을 정리한 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룸을 빠져나왔다.
그전에 큰 가방, 즉 수트케이스는 전날 밤 10시 전까지 룸 밖에 내어놓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트케이스 2개에 캐리어 가방 2개를 갖고 있었는데, 승선할 때와 하선할 때 수트케이스는 직접 가지고 승하선 하는 게 아니라는 점, 즉 승선할 때는 입구에서 포터들이 번호표를 붙여 관리해준다면 하선 시에는 룸을 맡아 청소, 정리해주는 분이 밖에 내어놓은 짐을 관리해준다는 거다.
이때는 내가 직접 전날 오후에 배달된 번호표에 주소와 이름을 꼼꼼히 기입한 후 수트케이스에 붙여 밖에 내어 놓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각자 들고 타는 캐리어가방만 관리하면 되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전날 수트케이스를 준비할 때 내일 입고 갈 옷과 신발, 장신구 등은 미리 빼어놓아야지 만약 이걸 잊게 되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어떤 이는 옷을 몽땅 다 짐에 넣어버려서 하선할 때 입고갈 옷이 없어 배쓰롭(Bathrobe)을 입고 하선하는 동영상이 있을 정도.
보통 나같은 경우, 간편하게 입을 옷 한 벌 정도와 신발, 화장품과 세면도구, 액세서리와 같은 귀중품, 그밖에 냉장고에 남아 있던 과일, 간식거리, 물 등을 캐리어 가방에 챙겼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게스트 릴레이션즈에 가 정산내역서를 요구해 검토하는 일이었다.
앱으로도 그 내역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내역서를 프린트아웃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하선한 후 잘못된 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 문제가 다소 복잡해질 소지가 있기에 미리미리 확인을 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기억나는 게 한 가지 떠올랐는데,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Future Cruises '
라는 곳에 들러 이미 우리가 예약한 다음 크루즈 가격을 한 번 알아봤다. 이미 승선하고 있는 고객에겐 더 큰 혜택을 준다는 뉘앙스가 있기에 과연 어떤 차이, 얼마의 차이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헌데 결과는 엄청 놀라웠다. 우리가 예약한 금액의 배가 훨씬 넘는 요금을 보곤 두 말 않고 알았다고, 생각해보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곤 우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결론적으로 이미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선상에서 다음 크루즈를 계획하고 예약하는 건 비추라는 얘기다.
그리고 하선 과정에 대해 말해 보자면, 하선 시 룸마다 번호가 있어서 순서대로 하선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스위트 룸 고객부터 하선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는 것도 덧붙여야겠다. 어찌 보면 객실 종류의 차별화가 끝까지 이어지는 셈인데 이점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자본주의 논리로 평가되는 건 무릇 호텔이나 크루즈나 비행기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에게서 보여지는 특징이다 보니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 터다.
거기까지는 다 이해도 되고, 괜찮았다.
하지만 막상 배를 빠져나와 항구 앞에 운집한 사람들을 보다 보니 슬며시 짜증이 밀려왔다.
'이거 뭐지? 끝났다고 이렇게 관리가 안 되는 게 말이 되는 거임?'
어찌 할 바 몰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남편과 나 또한 추풍낙엽처럼 갈 곳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다.
처음 승선때부터 '항구 픽업 서비스' '트랜스퍼 서비스' 이런게 있긴 했다.
공항에서부터 항구까지 모셔다주는 서비스와 항구에서 다시 공항까지, 혹은 로마 기차역까지 모셔다주는 그런 서비스 말이다.
헌데 문제라면 그 가격이 너무도 비싸다는 거였다. 무려 1인당 100유로에 가깝거나 그 이상이거나 그랬다. 해서 우린 당연하게도 그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었다.
그 결과가 어찌 할 바 모르고 항구에서 방황하는 초라한 인물로 전락한 셈이었다.
우린 하선을 하면 승선할 때처럼 적어도 몇 대의 셔틀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헌데 전혀 정보도 없이 뭔가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사람들, 혹은 개인 픽업서비스를 신청해 이름을 적은 피켓 같은 걸 들고 있는 기사들의 무리와 그들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뒤범벅이 된 그런 현장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탓을 하자면 미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우리 탓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하선할 때 어떻게 하라는 방송이라도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약간의 원망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의 불쾌감과 당황함을 장착하고 남편과 나는 이 난관을 뚫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남들처럼 눈치작전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로마 시내까지 가는 버스 앞에 서 있는 기사분께 물어봤다. 여기서 기차역까지 가는 셔틀버스는 없는 거냐고. 그분 왈 기다리면 올 거란다.
그때부터 우린 한 15분 정도를 그냥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버스 한 대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고, 사람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모여들기 전 촉이 발동한 남편과 나는 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짐이 가벼운 내가 먼저 뛰었고, 운 좋게 난 1등으로 버스 앞에 도착해 제일 먼저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럴 때 역시 잽싼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 아줌마는 그 저력을 발휘하게 된다! ㅎ
버스에 올라 짐 놓을 공간을 살피다 넓직한 곳을 발견해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곧 이어 버스에 오른 남편에게 손짓하며 오라고 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앉고 보니 역시나 그곳은 장애인좌석인 거다. 해서 우린 자리를 옮겼고, 들어오는 순서대로 뒤로 빠져주는 게 도리인 거 같아 제일 뒷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우리의 그런 큰 뜻을 여지없이 비웃듯 두 쌍의 남녀가 올라타더니 냉큼 그 자리를 꿰어찼다. 게다가 자기들 큰 수트케이스도 옆에 턱하니 세우고 보니 정작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가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보통 1인당 큰 짐 한 개, 작은 캐리어가방 1개 정도인데 그 두 커플은 가방이 더 많았다).
'지들 생각만 하면 안 되지! 적어도 사람들 통과하게 자리를 마련해줘야지!' 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내릴 때는 가운데 있던 그들이 제일 먼저 내렸고, 역시 맨 뒤라 맨 마지막으로 내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뭐 이런 뭣같은 경우가!'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치비타베키아 기차역에 도착해 서둘러 기차표를 사곤 우린 또 뛰었다.
남편이 이제 곧 도착이라고 재촉하면서 이렇게 뛰지 않으면 4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우린 눈썹이 휘날릴만큼 뛰었고, 다행스럽게 시간에 맞춰 기차에 올랐고, 그제서야 그간의 고생과 긴장이 풀어지면서 바깥의 풍경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남짓 지나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 인포 센터를 찾아나섰다.
우리가 인포 센터를 찾은 이유는 바로 '로마패스'를 사기 위해서였는데, 로마패스에는 48시간, 72시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48시간은 박물관이나 유적지 1곳이 무료에 할인 혜택이 있고 이틀 동안 지하철,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이 무료다. 반면 72시간은 박물관이나 유적지 2곳이 무료에 할인 혜택과 더불어 삼일 간 대중교통이 무료다.
우린 로마에서 이틀, 피렌체 하루를 이미 계획했기에 로마패스는 당연히 48시간으로 구입했다(요금은 1인당 32유로).
그후엔 택시 스탠드(이탤리에선 아무 곳에서 택시를 잡을 수 없다!)에서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3일밤을 묵을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일찍 도착한 우리에게 방을 내어주는 유머 넘치는 관리자를 보면서 흔쾌한 기분이 되었다.
참고로 우리가 묵은 곳은 '더롬헬로우'(The RomeHello)라는 호스텔 2인실이었는데 가격도 착했고(3박에 캐나다달러 418.74를 지불했는데 거의 4개월 보름 전에 익스페디아를 통해 예약했다), 분위기도 좋아 대만족이었고, 후에 다시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면 재방문 의사 200프로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 길어져 오늘은 이쯤에서 마쳐야겠다.
이후 로마여행이야기, 그리고 피렌체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겠는데, 직접 크루즈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탤리 여행에 관한 팁이 될 터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계속 지켜봐주시기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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