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연을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미국 배우들(그중 대다수는 한국계)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Beef'는 멈춰야 할 때를 놓쳐버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 정확히는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안 좋은 결과, 즉 Catastrophe(대재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제목으로 정한 'Beef'는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소고기'를 말하는 게 아니고, '말다툼' 혹은 '싸움'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두 개의 다른 세계(같은 이민자지만 한 명은 성공과 부를 누리는, 또 한 명은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를 살고 있는 두 남녀의 운 나쁜 만남, 즉 싸움으로 시작된다.
웬만한 날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정도의 일이지만 살다 보면 유난히 '예민하고 화가 치솟는' 그런 날이 우리 모두에겐 있지 않나?
여기 두 주인공 역시 운 나쁘게도 바로 그런 날 같은 장소에서 조우하게 됐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대참사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다.
어제 새롭게 선보인 영화라 세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 것이 분명해 삼가겠지만, 일단 이 영화를 보면서 아주 예전에 감상했던 영화가 떠올랐다는 말은 덧붙여야겠다.
무려 19년 전에 상영됐던 영화고 제목은 '콜레터럴'(Collateral)인데, 이 영화 역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 즉 환경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미약할 수도, 강인할 수도 있는 우리네 모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절대 악인 혹은 절대 선인은 없다는, 우리가 원치 않든 원하든 일어나는 일들이 사람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릴 수 있으며, 거기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때도 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그런 서사를 담고 있는 영화 말이다.
이미 상영된 지 꽤 오래된 영화라 영화 '콜레터럴'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제이미 폭스가 분한 택시 운전사 맥스는 자신의 승객이 살인청부업자라는 걸 알게 되자 톰 크루즈가 분한 살인청부업자 빈센트를 향해 "우리 인간들은 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너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는 뼈 때리는 말을 던진다.
이 말은 빈센트의 가슴에 꽂히게 되고, 완벽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킬러로써 나름대로 프라이드와 세상의 불만,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복수심 비슷한 대리만족감을 가지고 자신의 직업을 합리화하며 그다지 죄의식을 느끼지도 못했던 자신을 별 볼일 없고 주변머리도 없어 보이는 택시기사가 확실하게 정의했을 때 느끼는 자멸감과 자괴감을 우린 빈센트의 얼굴에서 분명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냉혈한 빈센트는 맥스를 살려두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 'Beef'에서 에이미가 대니를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살려두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바로 자신과 비슷한 고독한 한 인간 앞에서 나약해지는 보편적인 인간적 모습 말이다.
그 밖에도 영화 '콜레터럴'과 '비프'는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음악 또한 적재적소에서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 LA의 한인상가 모습(콜레터럴), 한인교회를 비롯해 많은 한국계 배우들(비프)이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럼 다시 영화 'Beef'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주제나 이야기 전개 상 이 영화는 드라마 장르긴 하지만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하기도 하고, 스릴러적 요소와 더불어 철학적 사색이 꽤 가미돼 있다. 거기에 더해 가끔 수위 높은 섹스씬도 포함돼 있다.
결과적으로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복합장르가 영화적 재미를 더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슬프게 짠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멈춰야 할 때를 놓쳐버렸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대재난,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선을 넘어버렸을 때 그것에서 비롯된 대참사'라 정의할 수 있겠고, 거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이것 아닐까?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닐 테니 적당한 선에서 멈추기!' '절대 선 넘지 말기!' 이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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