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영화 관람의 기회나 열정이 예전만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에 대한 정열이 식은 건지 아니면 유투브를 시청하다 보니 긴 상영시간이 버거워진 건지 스스로 헷갈리긴 하는데, 결론은 예전에 비해 극장을 찾는 횟수도 많이 줄었고(솔직히 코로나시국 후엔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걸 고백한다!), 영화 감상 자체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애정이 샘솟았던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이 영화의 바탕이 되는 소설 원작자가 얀 마르텔이라는 퀘벡 출신의 작가라는 점,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 역시 내가 살고 있는 퀘벡 주 몬트리올이라는 점, 실제로도 이 영화는 몬트리올에서 촬영이 돼 곳곳에서 익숙한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는 점 등이 되겠다. 원작자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퀘벡 출신 외교관 아버지의 근무지인 스페인에 서 태어나 그 후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자랐으며 본인의 모국어는 불어지만 이 소설은 영어로 썼다고 한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피터보로우라는 도시에 있는 트렌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다음 인도로 건너가 13개월 동안 모스크와 교회, 절, 동물원을 방 문했고, 또 그 후 2년간 종교 서적과 조난 이야기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 소 설의 근간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실제 경험과 그의 철학적 배경, 그리고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결집된 게 확실해 보인다는 거. 그는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것으론 단테의 신곡을 언급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나는 것으로는 알퐁스 도테의 ‘Le Petit Chose’(꼬마 철학자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를 꼽고 있다. 꼬마 철학자는 그가 10살 때 읽었던 책으로 어찌나 감명을 받았던지 책 한 권이 눈물을 선사할 만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발견하게 했던 책이라고 그는 덧붙이고 있다. 굳이 영화를 말하기 전 원작자에 대해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퀘벡 출신이라 반 가웠다는 점도 분명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소설 원작 을 각색해 만든 영화 중에서도 스토리 라인이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요소이자 감동의 원천이라는 점, 그리고 실제 영화에서도 원작자 얀 마르텔을 연상시키는 작가가 등장하고 있고, 주인공 이름인 ‘파이’가 실은 불어의 ‘piscine’(수영장이란 뜻)에서 비롯되는 등 작가 의 불어 사랑이 유난히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원작자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 영화에 대한 애정도 더욱 샘솟고 감동 또한 배 가 될 거란 생각에 영화 감상 평에 앞선 긴 사설을 늘어놓아 보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한다. 이안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야 이미 ‘브로큰백 마운틴’에서 충분히 맛 보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건 그는 참으로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고, 동시에 진정한 휴머니스 트라는 점이다. 그랬기에 이 소설을 큰 화면으로 옮기면서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전 달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3D로 ‘물’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물과 우리 인간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거대한 물(즉 바다)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과 호랑이, 그들 사이에 때론 먹이로 때론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어류와 그들의 삶의 터전인 망망대해,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식물들과 그곳에 서식하는 ‘미어캣’이 있는 ‘떠 다니는 섬’, 그곳의 담수와 열대림 등 화면 가득히 보이는 물과 초록의 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은 마치 어머니 뱃속에 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삶에 대한 엄청난 압박과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신기 하게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그는 이미 우리 눈에 익숙한 배우들을 멀리하고 참신한 얼굴을 발굴해 영화라는 제한적 환경을 최대한 최소화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환상적인 경험에 더욱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여겨진다. 결국 자연스럽고 살아 있는 연기력을 선보인 주인공을 캐스팅 해 그가 느끼는 그대로를 표출할 수 있도록 그의 장점을 최고점까지 끌어올리므로 영화의 감 동이 배가 된 건 물론 마치 관객인 우리 자신이 주인공과 함께 망망대해에서의 온갖 역 경을 뚫고 마침내 육지에 안착한 듯한 안도감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더불어 이 영화가 우리들에게 선사하는 또 다른 미덕은 바로 영화의 끝 장면에서 어른이 된 파이와 그를 찾은 소설가 얀 마르텔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우화, 그리고 그 우화를 통해 실 제 거친 세상(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작은 배)에서 자식을 지켜내려는 어머니 (오랑우탕), 그 배를 지켜야 하지만 고난에 빠진 항해사(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자신 에게 악의를 갖고 있던 혹은 세상에 있음직한 사악한 요리사(하이에나), 그리고 자기 자신(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이야기를 하므로 우화보다도 더 우화 같았던 진실 을 더욱 현저하게 드러내는 매력을 선사한 것을 들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이 모든 과정에서 신(어떤 특정한 신이라기보다 인간의 선함을 가장 큰 덕목으로 치는)은 결국 스스로를 돌보고 주변을 보살피는 생명체에게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찡하고 거룩한 희망을 선사했다고 나는 보았다. 다시 말해 대상이 인간이 되었든, 동물이 되었든 생명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음이 아닐는지…. 더불어 가장 힘 세고 두려워 보이는 존재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역설, 그 역설 속에 바로 우리 삶의 참 의미가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 시켜준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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