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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무지한 이들을 일깨우는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저의 개인적 견해로 무지한 이들을 일깨워주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그저 알아 들을 때까지 조근조근 깨우쳐주는 친절한 방법과 또 하나는 통렬한 유머와

해학으로 스스로가 언젠가는 깨우치게 만드는 불친절한 방법이요.  그 중 바로 이 작품 

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보여집니다.

 

해학과 풍자의 대가로 알려져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 유명한 인문학적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으로의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이제 겨

우 두 번 접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판단일진 모르겠지만, 그는 특히 이 작품

에서 아주 많이 불친절한 작가로 보입니다. 

 

그는 아주 대놓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신의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은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리고 그건 전

적으로 옳은 이야기라 여겨져 이렇게 일갈하는 그에게 일말의 섭섭함이나 적대감보다는 스

스로를 많이 반성하게 되면서, 그대 앞에서 왜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지 그게 안타깝기만 하

더군요.

 

원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아주 그럴듯한 제목은 순전히 우리나

라 출판사에서 만들어낸 제목이고, 실제로 이 책은 작가가 책임자로 있던 문학 잡지의 칼럼

에 기재했던 내용에 파스티슈(패러디와 비슷한 뜻의 모방작품을 가리키는 말)들을 더해 펼

쳐낸<디아리오 미니모 2>이 원제목입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다양한 컬럼 형식의 글들과 패러디가 포함되어 있는

, 최근에 읽었던 그 어느 책보다 제게 웃음을 자아내다 못해 박장대소하게까지 만들었던,

정말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지요.  적어도 중반부를 넘어서 까진 그랬습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저의 가볍고도 얄팍한 지식이 도저히 작품의 심오함을 따라잡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솔직히 뒷부분에 가선 건너뛰다, 다시 돌아오다 를 몇 번 하다가,

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건 말 그대로 글자만 읽기도 하면서 결국 한 권을 다 읽어내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제가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 아님 틀린 말일

까 그게 무척 헷갈리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그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래서 얼마

동안은 제 자신의 무식함에 반성하면서 기가 팍 죽어있기도 했단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저의 이해력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를 그저 존경과 부러움

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음, 또 이런 책을 접할 수 있었음도 큰 기쁨일 수 있다는 꾸겨진 겸허

함 내지 합리화를 거쳐 저는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을 제 아이들을 비롯해 주변 분들에게,

그 밖에 가능하다면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의 완전

한 이해력과는 별개로 이렇게 책을 읽고 난 다음의 감상을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별안간 이런 생각이 저의 뇌리를 스치기도 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특별히 불친

절한 것은 정말 깊은 뜻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그 뭐냐, 대부분의 어머니들

이 자녀들의 모자람을 그저 이해의 눈빛으로 감싸는 것과 달리 아버지들은 엄격하고도 호

되게 꾸짖고 단련시키듯 진정 독자들이 좀 더 똑똑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 저자는 친절함보다는 불친절한 방식을 채택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지요.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으면 공부도 좀 하면서 따라오란 말이야~’ 하는 맘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 위

해 패러디라는 장치를 통해 재미를 줬다고 밝히고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어리석

음에 대해 어리석지 않게 반응하기 위해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

을 있는 그래도 묘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작가는 개중에는 비판을 하거나 교

훈을 전달할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순수한 재미를 위해서만 쓴 글도 있다고 밝히므로 어

쩜 약간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주 솔직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확신에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나 작품에 대한 판단은 읽는 이들 각자의 자유일 수도 있겠고, 호 불호 역시 각자

의 취향과 선택이겠지만 제겐 이 한없이 오만하면서도 촌철살인적인 표현의 대가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 만이 흘러 넘쳤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제가 이상한 취향을 가진 메

조키스트가 아니라면, 그에게 느끼는 매력이 그가 그토록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는 확실

한 사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 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게 맞겠지요? 

 

책장을 덮는 바로 그 순간, 저는 다시 한 번 그가 확실히 매력적이며 동시에 닮고 싶은 사

람임이 분명하단 걸 거듭 확인했고, 그러므로 저도 그처럼 글쓰기를 해봐야겠단 결심을 굳
혔으며 또한 제 자신을 그쪽(?)으로 더욱 연마하고 채찍질하게 만든 그로 하여금 한 뼘쯤
은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착각이 아니기를 바래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