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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이야기

미약한 인간군상의 집대성을 접하고 울컥함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서울의 봄'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악과 선은 늘 우리를 갈피 못 잡게 하고 이리저리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그런 아수라 속에서 정신줄을 제대로 붙잡고 소신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의 미약함을 넘어서는 '바람직한 인간상'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보는 내내 울컥함과 응어리를 짊어진 채 피 토하는 심정이 되곤 했던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여주는 인간상은 바로 이런 '바람직한 인간상'의 재정립이 절실한 작금 대한민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범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애쓰고 있는 게 현 대한민국 대개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가장 대한민국에서 낙후된 분야가 바로 정치라고 느끼고 있는 일인으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다시 한번 내 신념을 재확인시켜줬다고 말하고 싶다.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태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라고 독려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본 인물은 절대악으로 보이는 전두광이나 절대선의 표상 이태신이 아니다.

그들의 대립 안에서 자신의 처신을 고민하는 한없이 미약하고 미약한 군상들, 즉 범인(凡人)들이다.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소신도 없고 용기도 없고,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던져버린 초라한 인간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는 당장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역사긴 하다.

그러기에 긴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린 진실을 접하고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하며 분별하게 된다.

때론 그 시간이 하염없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게 이것만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믿는 정의는 고진감래, 인과응보, 자작자수 같은 것인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신념과 정의를 지키던 이에게 휘몰아치는 불행과 악행을 일삼던 이가 취하는 혜택과 보상을 보면서 허탈해지곤 한다.

마침내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선을 추구해야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아마 이런 이유로 대개의 범인들은 끝까지 선의 편에 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악의 결말이 한결같다면야 그들은 당장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선을 추구하고 선을 옹호할 테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개의 인물들 또한 살면서 봐왔던 이런 모순에 끝내 굴복한 인간들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비범과 평범의 갈림길에 놓인다.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당위성에 목숨을 건 인물과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패대기 쳐지는 갈대의 삶을 선택하는 몽매한 이들로 구별된다. 

 

참됨보다는 시류에 편승하고 상황을 파악해 대처하는 얍삽한 인간군상이 되는 걸 경계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삶의 아이러니가 당신을 속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려는 노력,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소신에 대한 확신성을 정립하려는 일관된 자세,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괴벨스 같은 자를 분별하려는 의지 같은 거 말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그것! 

역사는 되풀이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실을 거슬릴 수는 없다는 핍진성!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악과 선은 늘 우리를 갈피 못 잡게 하고 이리저리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그런 아수라 속에서 정신줄을 제대로 붙잡고 소신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의 미약함을 넘어서는 '바람직한 인간상'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보는 내내 울컥함과 응어리를 짊어진 채 피 토하는 심정이 되곤 했던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여주는 인간상은 바로 이런 '바람직한 인간상'의 재정립이 절실한 작금 대한민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범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며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애쓰고 있는 게 현 대한민국 대개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가장 대한민국에서 낙후된 분야가 바로 정치라고 느끼고 있는 일인으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다시 한번 내 신념을 재확인시켜줬다고 말하고 싶다.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태와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라고 독려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본 인물은 절대악으로 보이는 전두광이나 절대선의 표상 이태신이 아니다.

그들의 대립 안에서 자신의 처신을 고민하는 한없이 미약하고 미약한 군상들, 즉 범인(凡人)들이다.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소신도 없고 용기도 없고,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던져버린 초라한 인간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는 당장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역사긴 하다.

그러기에 긴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린 진실을 접하고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하며 분별하게 된다.

때론 그 시간이 하염없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게 이것만은 아니다.

분명 우리가 믿는 정의는 고진감래, 인과응보, 자작자수 같은 것인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신념과 정의를 지키던 이에게 휘몰아치는 불행과 악행을 일삼던 이가 취하는 혜택과 보상을 보면서 허탈해지곤 한다.

마침내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선을 추구해야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아마 이런 이유로 대개의 범인들은 끝까지 선의 편에 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악의 결말이 한결같다면야 그들은 당장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선을 추구하고 선을 옹호할 테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개의 인물들 또한 살면서 봐왔던 이런 모순에 끝내 굴복한 인간들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비범과 평범의 갈림길에 놓인다.

세상의 손가락질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당위성에 목숨을 건 인물과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패대기 쳐지는 갈대의 삶을 선택하는 몽매한 이들로 구별된다. 

 

참됨보다는 시류에 편승하고 상황을 파악해 대처하는 얍삽한 인간군상이 되는 걸 경계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삶의 아이러니가 당신을 속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려는 노력,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소신에 대한 확신성을 정립하려는 일관된 자세,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괴벨스 같은 자를 분별하려는 의지 같은 거 말이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그것! 

역사는 되풀이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진실을 거슬릴 수는 없다는 핍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