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감성적이었고 추억이 많았던 시대가 바로 70년대가 아닐까 싶다.
70년대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이 바로 나의 과거, 그리고 추억과 어우러져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우리 학창 시절 최고로 잘 나갔던 명동의 모습, 그리고 명동 입구에 있었던 미도파백화점, 한국은행 앞의 분수대는 내 어린 시절 가끔 어머니와 돈가스, 함박스택을 먹으러 갔던 바로 명동의 그곳을 연상시켰고, 미도파백화점에서 괴기 전을 관람하곤 혼비백산했던 당시를 뚜렷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의 한국가요와는 뭔가 좀 다른 분위기의 노래들이 당시 새롭게 등장하면서 내 맘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떠올라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영화 '쎄시봉'은 한국의 가요사를 새롭게 탄생시킨 음악 메카인 쎄시봉과 그에 연관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실과 허구로 절묘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오근태와 민자영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그 외 인물들은 우리 가요사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가요의 새장을 열었던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주로 나는 팝을 많이 들었지만 가끔은 가요도 들었었는데 그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바로 송창식이었다. 그가 윤형주와 함께 듀엣으로 활동했던 트윈폴리오의 번안가요도 괜찮았지만 어린 맘에도 참 시대를 앞서가는 세련된 음악으로 느껴졌던 이장희의 음악들은 내가 우리 가요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긍지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던 음악이기도 했다.
당시 소위 말하는 논다는 애들만 봤다는 영화 '별들의 고향'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의 OST로 쓰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비롯해 그가 만든 '휘파람을 부세요'나 '비의 나그네'는 참으로 감성 돋는 음악들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드라마에서 쓰인 OST로만 알았던 노래가 바로 번안가요였고, 제목이 '백일몽'이란 것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됐다. 그밖에 많은 노래들이 내 귀와 가슴에 촉촉이 내려앉았고,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어줬다.
노래도 노래지만 이 영화가 날 과거의 추억으로 이끌었던 또 다른 요소를 들자면 함께 했던 낭만 끝에 해 줄 게 없어, 가진 게 없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다고 믿었던 한 남자를 영화를 통해 문득 떠올리게 돼서였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서글픔과 회한의 눈빛으로 5월의 하늘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영화 내내 떠올라서였다.
더불어 영화의 주인공 오근태, 그의 순수했던 영혼의 상처가 오래도록 그를 놓아주지 않는 걸 보며 실연의 아픔과 시대의 아픔에 짓눌려 고통받는 그에게서 또 다른 누군가가 또 연상돼서였다.
물론 영화를 감상하면서 오롯이 내 개인적 추억에만 젖어든 건 또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당시 사회상이 빚어낸 모든 희생자들에게 불현듯 연민이 복받치는 건 물론이고, 그런 암울했던 과거의 어딘가에서 고통받았을 이들 중에는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오근태 같은 이들도 있었을 거란 생각에 미쳤을 땐 어느 정도의 공분(公憤)이 날 휘감았다.
하지만 끝까지 울분에 쌓여 있을 수만은 없었던 건 그럼에도 그때 그 시절이 몹시 그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들을 과거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다 아름다운 낭만으로 채색시킬 순 없겠지만 때 묻지 않은 영화 속 청춘들의 모습에서 나의 청춘이, 애틋한 첫사랑의 낭만이 풋풋한 그리움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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