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게 오르막을 올라 료칸에 도착해 보니 아담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우릴 반겼다.
여기서 이국적이라 함은 일본적인 게 아닌, 일본에서도 다소 이국적인 바이브를 말함인데, 물어보니 인도네시아가 근원지였다.
일본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인들이라는 걸 이번 도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여기도 역시 인도네시아와 미얀마 분들이 일하고 계시는 듯 보였다.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어보니 주인은 일본인이란다.
웰컴티를 마시고 체크인 과정을 거쳐 우린 우리 숙소로 안내됐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정갈하면서도 적당한 크기의 다다미가 보였고, 밖을 내다보니 야외 거실, 야외 욕조(오픈 에어 배스)가 눈에 뜨였다.
분위기는 맘에 들었고, 우린 일단 피곤함을 떨치기 위해 각자 샤워를 마치고 야외 욕조에 몸부터 담갔다.
다미안이 먼저, 그다음 남편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욕조에 들어갔는데 내가 들어갈 땐 다미안이 밖으로 나와 여유로웠다.
밖은 초록초록하고 공기는 신선했으며 이제야 제대로 된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간 도쿄에서 흥미롭기는 하되 너무 바쁘고 다난했던 일정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거지!'
하면서 한동안 욕조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욕조에서 빠져나와 모처럼 랩탑을 켜고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아래층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 식사가 준비됐다는 전갈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릴 안내하기 위해 우리의 식사를 맡은 여자분이 방문을 노크했다.
우린 그녀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식사가 이미 어느 정도 세팅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정갈해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식이었다.
차례차례 음식이 들어왔고, 우리가 주문한 게요리가 당도했을 때 난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많은 음식을 과연 우리가 다 소화할 수 있을까?'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게를 좋아하는 다미안도 한 점 맛보더니 더는 못 먹겠단다.
남편은 원래 게를 좋아하지 않고 나 역시 너무 배가 불러 손도 댈 수가 없었다.
해서 난 서브해 주시는 분께 요청했다.
"이걸 방에 가져가서 먹으면 안 될까요?"
처음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손도 거의 안 댄 게요리를 다 버릴 수도 없는 처지고 보니 그들도 서로 의논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그들이 내린 결론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원하면 내일 먹으라는 거였다.
하지만 내일 아침엔 또 아침 식사가 준비돼 있을 터이고, 아침부터 게요리를 먹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해서 난 다시 한번 사정했다.
"방에선 음식물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밖에 있는 거실에서 먹을게요."
그들은 다시 한번 의논했고, 이번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우린 방으로 돌아왔고, 다미안과 남편은 대욕장으로 향할 준비를 마치고 떠났고, 난 그들이 음식을 가져오기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랩으로 포장한 게요리를 가져다줬고, 난 냉장고에 보관한 후 남편과 다미안을 기다렸다가 대욕장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대욕장을 전세내면서 남편과 다미안 역시 남성 대욕장에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상기하곤 이곳은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싶었다.
알고 보니 이 료칸은 주로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듯 보였고, 함께 벗고 목욕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 입장에선 방에 마련된 개인 욕탕을 사용하는 게 훨씬 편했을 터이니 대욕장이 비워 있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어쩌면 대욕장 규모가 크지 않으니 일본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순간 들었다.
뭐가 어찌됐든 덕분에 난 호젓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다미안에게 게요리를 먹겠느냐고 물었다.
다미안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미 요리됐고, 우리에겐 보온병이 있으니 게살을 껍질과 분리해 보관했다 가져가는 것.
야외 거실로 나가 난 정성껏 게살을 껍질로부터 분리하는 해체작업에 돌입했다.
다 끝내고 보니 보온병 하나 가득하게 게살이 쌓였다.
만족감에 혼자 그윽하게 미소까지 지으며 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기 전 난 제일 먼저 눈을 떴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대욕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대욕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잠시 목욕을 하며 밤에 봤던 풍경과 아침의 풍경 차이를 감상했다.
방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남편과 다미안은 꿈나라에 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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