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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여행 셋째 날 '애증의 발렌시아! 발렌시아!'

크루즈 여행 셋째 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앞서, 이번 기항지 발렌시아를 방문한 후 발렌시아에 대해 정확히 두 가지 이미지가 내 뇌리에 새겨졌다는 걸 밝혀둔다.

애증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그 이유를 먼저 밝히고 발렌시아에서의 하루를 기술해야겠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저 멀리 보이는 발렌시아에 감격하면서, 항구에서 벗어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그 순간 이런 일들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우선, 발렌시아에는 내 초등 친구가 뒤늦게 이민해 살고 있다.

뒤늦게라고 말한 이유는 50이 훨씬 넘은 나이에 아이들은 다 한국에 두고 와이프와 단 둘이 이민을 결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항지로 발렌시아가 포함됐다는 걸 안 순간, 그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 왠지 정감이 가는 도시가 돼 버렸다.

그리고 색다른 도시나 나라를 방문할 때 빠질 수 없는 시장 구경, 발렌시아 최대의 시장인 '센트럴 메르카도'

에서 갖가지 진귀한 하몽과 치즈를 구경하고, 직접 타파스로 맛도 보고, 먹음직스러운 귤과 감, 자두도 사들고 신이 났었다.

그 후에는 빠에야의 본고장이 발렌시아라는 걸 미리 알고 갔기에 한 식당에 들러 빠에야를 주문했는데, 정말 맛이 환상적이라 기분이 마냥 업됐던 게 사실이었다.

그랬었는데... 

 

대성당 측면모습.
대성당 종탑 모습.
'실크 거래소'는 다행히 문을 열어 구경할 수 있었다.
타파스로 하몽과 소시지를 맛보고 음료도 한 잔씩 무료! 24시간 카드에 포함돼 있었다.
실크 거래소 정면 모습.
이곳이 우리가 빠에야를 먹은 곳인데 빠에야, 전채요리, 빵, 남편 와인, 물 이렇게 해서 62. 70유로가 나왔다.

 

이런 좋은 발렌시아에, 아니 발렌시아 여행에서 실망을 금할 수 없는 일이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벌어지고 말았다.

그 첫 번째는 항구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 24시간 발렌시아 원데이 티켓을 받아 들고 신났던 건 잠시 마침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뮤지엄들이 문을 닫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크게 현타가 온 것이 그것이다.

에고나~ 첨에 내 실수였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어찌 보면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닌 게 맞았다! 

크루즈 여정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때부터 약간 머리에 김이 나기 시작했다.

'맞아! 첨에 계획했던 대로 10월 21일이 아닌, 10월 2일 출발이었다면 이런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암튼 그건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걸로 애써 맘을 다스렸고, 금방 괜찮아졌다.

그랬었는데...

 

발렌시아에 가면 '오르차다'라는 음료를 맛본다고 해서 가장 유명한 이곳에서 맛봤고 맛있었다!
파톤(Farton)이란 빵과 함께 먹는 거라고 해서 주문해봤고, 나중엔 츄로스도 주문했다.
이곳에선 음료 두 잔에 파톤, 츄로스 이렇게 해서 모두 12.60유로를 지불했다.

 

발렌시아 우체국 건물. 
발렌시아 시청 건물. 내부와 2층 전망대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 이것도 점심 먹고 들르니 오후 2시까지만이란다! 휴~
'예술 과학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멋진 공원과 조경, 건물들이 참 멋졌다.

 

진짜 발렌시아를 미워하게 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건 모든 발렌시아 일정을 마치고 항구로 복귀하는 그때 항구에서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짐 검사를 마치고 통과해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다급하게 남편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되돌아가보니 남편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우리가 구입한 과일 꾸러미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왜 그래?"

내가 물었더니 남편이 과일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단다.

내가 다시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었는데?" 했더니 검색대 보안 혹은 경찰이 또르륵 굴러가는 소리로 잽싸게 대답했다.

"과일 반입 금지야!"

"뭐? 왜?"

내가 이렇게 물었더니 규정이 그렇단다.

"작년에 카르타헤나에서도 아무 문제없었고, 다른 항구에서도"

그와 그녀가 내 말을 잘랐다.

"안돼! 과일 반입 금지니까 여기서 다 먹고 가든지 맘대로 해!"

 

정말 머리꼭지가 돌 거 같았다.

평소에 난 평화주의자지만 공공의 적을 만나거나 어이없는 상황을 만나면 결연해지면서 한 치의 양보를 불허하는 스타일이다. 해서 난 다시 따졌다.

하지만 어차피 승부는 결정이 나 있었다. 게다가 겁먹은 남편이 이런다.

"당신 자꾸 이러다 쟤들 열받으면 배로 못 돌아갈 수도..."

그 말에 겁먹은 건 아니었지만, 알았다고 하곤 구입한 자두 세 개를 들고 한쪽으로 가 남편과 일단 나눠 먹었다.

으적으적 걔네들 씹어먹는 기분으로다 마구 씹어댔다.

그리고 아깝게 뺏겨버린 귤도 까먹을까 하다 배가 불러 포기하는데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손도 안 댄 큼지막하고 먹음직스러운 내 감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휴! 내 기필코 항구마다 돌면서 물어보고 나중에 진정서를 넣든지 말든지 할 거다!'

이렇게 결심하고 툴툴거리며 배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하다 보니 또 슬슬 머리 속으로부터 김이 올라오긴 하는데, 참아야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후 항구마다 돌면서 물어봐도 어디에서도 과일 반입 금지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왜? 왜 안 되는데?"라고 했다.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 이상한 인간들은 꼭 존재하는 법.

그 일당은 그렇게 빼돌린 과일을 나중에 사이좋게 나눠 쳐드셨겠지?

그래! 적선했다고 치자! 이렇게 맘을 다스리면서 그것들에게 휘둘리지 말자고 다짐하곤 이 글을 쓰기 전까진 불쾌했던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다.

휴! 일단 이렇게 써놓고 이 글을 읽으실 분들에게 고자질을 하고 나니 조금 속이 후련한 것도 같고, 정신승리가 됐다!

말이 갑자기 뜬금없이 튀는 거 같지만, 여긴 지금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리고 있다. 

패시오창을 통해 탐스러운 눈을 바라보다 보니 또 맘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순해지기 시작했다. 픕!

그리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

말을, 아니 글을 한참 쓰다 보니 발렌시아에서의 세세한 일정은 못 쓸 것 같아서다.

그냥 사진으로 대치하면서 맛났던 빠에야 사진 보고 그때 그 맛을 기억해내 다시 한번 흐뭇한 순간을 경험해야겠다.

그리고 24시간 카드로 누렸던 무료 뮤지엄 입장과 따스했던 햇살과 행복해 보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또 떠올리면서 다시금 행복감에 젖어야겠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발렌시아에 대한 두 가지 이미지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화려함과 화사함은 너무도 멋졌지만 왜 나한테만 그렇게 가혹했느냐는 애증의 심상!

 

하지만 결론적으로 발렌시아는 참 멋졌고, 안 좋은 경험을 한 것은 맞지만, 발렌시아는 아무 죄가 없다는!

 

곳곳에 멋지고 화려한 색감의 건물들도 꽤 보였다.
발렌시아 랜드마크 중 하나인 '콰르트 타워'
이 날도 맛난 점심 덕(아님 탓?)에 저녁은 뷔페식당에서 간단하게 마쳤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