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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넷째 날(첫번째 바다항해날)

바다를 조망하며 크루즈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바다항해날이 도래했다.

하지만 이전의 크루즈 여행과 달리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는 느긋함이란 기분을 느끼기가 많이 부족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다.

 

일단 이번 크루즈에는 선사 크기에 비해 다소 많은 승객들이 승선한 듯한 느낌 아닌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탔던 리플렉션호 때는 팬데믹 후 아직까진 해외여행, 그중에서도 일종의 갇힌 공간 크루즈여행을 선택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일종의 어드밴티지가 있었고, 엣지 호 때는 워낙 배가 크고 여정(대서양횡단이라 기항지가 많지 않다는) 자체가 그렇게 많은 이가 선호하는 게 아니다 보니 널널한 감이 있었던 반면, 이번 크루즈는 여정도 꽤 인기 있는 여정이 분명해 보였고, 배 사이즈도 작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승객밀도가 이전에 비해 많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고로 바다항해날 편안히 쉴 수 있는 선베드를 잡기가 수월치 않은 감이 농후했다.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으니 남편과 나는 야외 수영장이 아닌 '솔라리움'만 선택했는데, 다른 이들 마음도 우리 같았던 건지 아침 일찍 눈이 떠져 나 혼자 먼저 '솔라리움'을 찾았을 때 이미 몇몇 사람이 눈에 띄었다.

아침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말이다!

자리를 잡고 가져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남편이 왔다.

 

차차 볼룸 댄스를 배울 기회도 있었는데 남편과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리~ ㅎ
세끼를 모두 배에서 먹는 날은 점심은 되도록 간단하게.
대극장에서 빙고게임도 열렸는데 역시 남편과 나는 이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린 곧 아침식사를 하러 갔고, 내 자리 하나 맡아놨을 뿐인데 갔다 오니 자리가 흔적 없이(물통이 없어졌다.) 사라져 버렸다.

'그럴 수 있어!' 했다.

왜냐면 이번 크루즈는 승객밀도가 높다 보니 자리를 맡아놓지 말라는 메시지가 선베드마다 꽂혀 있었기에 말이다.

비록 내가 아침 일찍 자리를 잡았었다 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난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근처에서 선베드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여곡절까지는 아니지만 암튼 우린 다시 선베드를 잡았다.

둘이 함께 하진 못했고 따로따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했다.

그렇게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하면서 늘어지는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우리가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 인사이드룸을 선택하게 된 건 지난번 크루즈 여행 때 어떤 노부부가 들려준 이야기가 우리에게 인사이드룸을 경험해 봐야겠단 영감을 줬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방에서 있으려고 크루즈 여행을 선택한 게 아닐 바에 룸에 돈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는데 격하게 동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다거나 일종의 폐소공포증이 있다거나 낭만이나 그 밖의 것에 의미를 두는 이들에겐 오우션뷰나 베란다룸이 훨씬 와닿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베란다룸을 경험해 본 우리로선 좀 더 실용적인 여행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인사이드룸을 선택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전혀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잠이 훨씬 잘 온 거 같단 생각도 있다.

노부부 말처럼 방에서 있는 시간보다는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 답답함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사우나를 발견한 것도 바로 이날이었다.

솔라리움 선베드에서 유유자적하다 화장실을 찾았는데 그게 그냥 화장실이 아니었던 거다.

샤워실에 락커까지 갖춘 사우나시설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그날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사우나실을 찾았다.

 

 

바다항해날은 보통 정장 드레스코드날이다.

예전엔 다소 엄격하게 정장을 추구했다면 요즘 들어선 남자 경우엔 정장이 아니더라도 슬랙스에 드레스 셔츠 정도, 여자 경우엔 이브닝드레스보단 칵테일 드레스나 슬랙스에 패션 셔츠 정도를 요구하는 추세다.

그래도 '이브닝 쉬크'란 드레스코드가 명명된 날엔 가져온 의상 중 가장 화려하고 좋은 걸 보통은 챙겨 입고 정식을 먹으러 식당을 찾곤 한다.

 

나 역시 이번 크루즈에는 이브닝드레스는 가져가지 않았고, 가져간 칵테일 드레스도 입지 않았다.

대신 포멀 드레스에 동생이 사줬던 카디건을 걸쳤는데 많은 이들이 멋지다고 해줬다.

식사들 마치곤 그날은 좀 더 여유롭게 크루즈 배를 돌며 이것저것 사진도 찍고 대극장 공연도 즐기다가 룸으로 돌아왔다.

 

 

그날 대극장에선 지난 셀레브리티 리플렉션에서도 감상했던 가수 '벤 밀즈'가 공연해 다시 그의 노래를 즐기게 됐는데, 지난번엔 조금 느끼한 느낌을 받았던 반면 이번엔 그냥 좋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도, 드라마도, 책도, 그리고 여행도, 노래도 다 경험하는 이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다른 공연을 조금 기웃거리다 우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