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 다섯 번째 날을 이야기하려니 또 한숨부터 나온다.
대체적으로 남편과 나는 여행 내내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해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했던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는 말에서 아마 감을 잡으실 듯싶다.
먼저, 다섯 번째 날의 기항지는 말라가(Malaga)였다.
말라가는 피카소가 탄생한 지역으로 유명하고, 그밖에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내가 말라가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이 외에도 항구가 시내와 무척 가깝고 항구 바로 앞까지 택시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물론 우린 택시를 이용하진 않았지만)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오버나잇을 하다 보니 다른 곳보다는 좀 더 여유롭게 이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날씨로 인해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순 없었지만 한쪽에선 해수욕을, 또 한쪽에선 요트와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말라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분명해 보였다.
그날 우린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샌드위치까지 만들어 기항지 선택관광 대열에 합류했다.
8시 반에 항구에서 출발해 대략 2시간 걸려 그라나다를 방문했다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총 8시간 여정에서 버스 왕복 4시간을 빼면 대충 4시간이 남지만 실제로는 그에 많이 못 미치는 시간을 그라나다에서 보내는 셈이었다.
선택관광 말고 사실 첨에 항구에서 그라나다까지 교통편을 알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알함브라 궁전을 3~4시간에 구경하는 건 무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작부터 불안했는데 이런 불안이 더 가중된 건 우리를 인도하는 가이드를 보고부터였다.
그녀는 다소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구사하며 출발시간부터 지체했다.
사람들이 다 버스에 들어왔음에도 확인한답시고 다섯 번을 머리수를 셌다.
그렇게 8시 반이 훨씬 넘은 10분 전 9시에 버스가 출발했고, 중간에 화장실에 들른다고 휴게소에서 또 시간을 뭉기더니 결국 그라나다에 11시가 다 돼 도착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2시까지, 적어도 2시 반까지는 꼭 버스로 돌아오란다.
문제는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구시가지에서 버스 탑승할 곳까지 걸어서 대략 45분이 걸린다는 거였다. 한 마디로 우리를 내려준 곳과 우리를 픽업하는 장소가 다른 건 고사하고 멀어도 너무 멀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알았다고 하곤 우린 서둘러 알함브라 궁전 입구를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 실수(물론 남편의 이메일을 이용했기에 남편이 미리 알아놓았을 걸로 예상했었지만 더블체크 하지 않은 건 내 실수!)로 궁전 입구에서 이건 표가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QR코드가 있었지만 우리가 예약한 곳에 가서 입장권으로 교환했어야 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는데, 그 거리가 꽤 되다 보니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실수에, 남편은 늦게 걷고, 나만 마음이 급해 뛰다시피 하는 게 화가 난 것.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그곳을 찾아 산 넘고 물 건너 결국 표를 받아 들고 또 다른 입구를 통해 알함브라 궁전으로 입성했다.
사람들은 어마무시하게 많았고, 우린 뛰다시피 하며 헤네랄리페로 가 그곳을 구경하고, 또 뛰다시피 자리를 옮겨가며 궁전을 감상했다.
말이 감상이지, 예약한 곳에서 다운로드하여간 오디오 가이드도 듣지 못한 채 종종걸음으로 눈도장 찍기 바빴던 게 사실이었다.
알함브라 궁전 최대 하일라이트라는 '나자르궁전'입구에선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들어가려다 운 좋게 나까지는 들어가게 됐는데, 남편이 또 늦게 와 결국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1시 반이었는데, 1시 입장이 불가능해지자 난 입장객들이 다 들어간 후 사정을 했다.
"우리가 크루즈 여행자라 버스 타고 여기까지 와서 시간이 촉박하니 조금 일찍 들여보내줄 수 없을까요?"
그가 날 보더니 "15분 전에 들여보내 드릴게요."
15분이 어딘가 싶어 고맙다는 말을 몇 번 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1시 15분이 돼 입장을 할 수 있었는데, 궁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또 줄이 한참이라 기다려야 했다.
그때 또 한 번 현타가 오며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알함브라 궁전은 이렇게 오는 게 아니었어! 절대!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이곳 호텔에서 숙박하며 느긋하게 돌아봐야 하는 것을~'
역시 급하게 급하게 사진을 찍어대며 간혹 정교한 아라베스크 양식 꽃문양과 단아한 디자인에 감탄하며 정신없이 궁전 구경을 마쳤다.
그건 그야말로 관광이지 여행이 아니었다.
느긋하게 돌아보며 오래전 시간의 숨결을 느끼며 그 안에 한 줌의 내 상상력을 불어넣는 참다운 여행 말이다!
시간이 촉박한 우린 운 좋게(정말 운이 좋았다. 다행히도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으니~)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2시까지 오라던 가이드는 딱 2시 반이 되어서야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
버스에서 하차하기 전 그녀는 자긴 정식 가이드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럼에도 자기와 함께 그라나다를 둘러볼 사람들이 있다면 기꺼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말했었고, 우린 해당되지 않아 급하게 버스를 떠났지만 그녀를 따라갔던 이들이 있었다.
우린 버스에 올랐고, 시간이 없어 먹지도 못한 샌드위치를 그제야 먹으며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알함브라 궁전 관광을 마쳐 많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치부하며 이후에 있을 좋은 일(?)을 기대하는 걸로 맘을 바꿨다.
To Be Continued...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여섯째 날(2023/10/26) 낮의 '말라가' (1) | 2024.01.03 |
---|---|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다섯째 날 2 말라가 '아랍 목욕탕' 체험기 (0) | 2023.12.30 |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넷째 날(첫번째 바다항해날) (1) | 2023.12.19 |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여행 셋째 날 '애증의 발렌시아! 발렌시아!' (1) | 2023.12.11 |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여행 둘째 날, 다시 찾은 '팔마 데 마요르카' (1) | 2023.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