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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페인 포르투갈 크루즈 여행은 끝나고(23/10/30)

포르투에 이어 포르투갈 두 번째 도시이자 수도인 리스본에 도착한 날은 제법 화창했다.

아주 이른 시간에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마친 우리는 이전 로마 크루즈 터미널과 비교해 봤을 때 훨씬 체계가 잘 잡힌 리스본 크루즈 터미널에 감탄을 이어갔다.

모든 사항들(하선해 짐을 찾는 과정)이 신속했을 뿐만 아니라 훤칠하고 격식(양복을 착용한 전문성이 돋보인)까지 차린 젊은이들이 승객의 짐을 카트에 실어 택시 정류장까지 날라주고 있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게 된 우리는 리스본에 대한 기분 좋은 인상을 받았고 젊은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팁을 남기고 택시에 올랐다.

 

크루즈 배에서 바라본 리스본 전경

 

택시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하고 남편과 나는 리스본 시가지를 둘러보다 내 눈이 기사가 있는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앞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터기가 눈에 안 보이는 거다.

난 감이 좋지 않아 그때부터 조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린 어느 지점에 도착했는데, 기사 말이 자기는 크레디트카드 결제기가 없단다.

현금으로 달라는 얘기였다.

우리도 현금이 부족하다고 내가 말하려는 찰나 남편이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는데, 우선 우릴 내려준 지점은 호텔 바로 앞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쪽은 지금 택시가 들어갈 수 없어 여기서 내려준다면서 한 블록만 내려가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택시비 28유로를 요구했다.

거리에 비해 너무 비싼 감이 있어 그 요금은 어떻게 책정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기 다 픽스된 가격이야."

난 아무래도 뭔가 찝찝함이 느껴져 택시 번호판과 그의 영업번호인 듯 보이는 번호를 카메라로 찍어뒀다.

 

 

남편과 난 각각 두 개씩 짐을 낑낑거리며(남편은 큰 슈트케이스 두 개라) 옮기기 시작했고,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겨우 호텔을 찾았다.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호텔 측에선 우리에게 방을 내줬고, 난 궁금해 항구에서 여기까지 대충 택시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봤다.

리셉션니스트가 얼마를 지불했느냐고 하더니 28유로라는 말에 보통보다는 조금 더 지불한 거 같다고 했다.

이미 지난 일이라 우리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하는 의례적인 말로 난 해석이 됐고, 난 고맙다고 대답하곤 룸으로 올라갔다.

 

이곳이 우리가 묵었던 호텔인데, 4박에 700 캐나다 달러로 위치 훌륭하고 가성비 좋았던 호텔.

 

대충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찝찝한 기분을 뒤로한 채 일단 리스본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미리 구입해 놓은 48시간용 리스보아 카드를 먼저 찾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차피 우리가 하선한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그 말인 즉, 대부분 뮤지엄은 월요일이 휴무이니 그날부터 사용하긴 아깝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리스보아 카드는 내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하는 게 낫다고 작정하고 우리는 리스보아 카드와는 상관없는 곳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래 4박 5일 머무르기로 돼 있었던 여정이 비행기 스케줄 덕 혹은 탓에 하루 늘어난 5박 6일 이 돼 버린 리스본 여정을 시작했다.

호텔에서 뮤지엄이 아닌 명소를 추천받았는데, 그곳은 호텔에서도 걸어갈 만한 '생 조르쥬 성'.

그곳을 향해 길을 걷다 보니 흔히 보이는 유럽의 교회 풍경이 익숙하게 다가왔고, 지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목적지만을 향해 걸었다.

 

이때만 해도 저 뒤에 보이는 게 리스본 대성당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는! 
리스본에도 로마 유적지가 있었다.
우리가 텄던 배가 다른 손님들을 태우고 또 다른 여정을 준비 중이라 여전히 항구에 정박 중.
정원이 아줄레주 장식으로 된 꽤 멋진 교회 모습.

 

막상 목적지가 눈에 띄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 역시 리스보아 카드 소지자는 무료 관람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아님 적어도 할인?'

그래서 그곳까지 애써 걸어 도착했지만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고, 결론적으로 그 후 시간이 많았음에도 다신 그곳을 방문하지 못했다는 후일담을 전한다.

 

그리고 기껏 올라갔던 높은 곳을 이번엔 반대로 뚜벅뚜벅 내려오다 의외로 멋진 전망대를 발견했고, 우린 그곳에서 명장면을 마주치게 됐다.

바로 핸섬한 남자분이 아름다운 여자분께 청혼을 하는 장면!

햇살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그 장면을 담았고, 그걸 보여줬더니 두 분은 한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오른쪽은 국립판테온이고, 왼쪽은 빈센트 수도원이라고 하는데 가 보진 못했다.
그림같은 장면을 연출한 곳은 바로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그리고 그곳에서 우린 경찰관을 마주쳤고, 급기야 나는 있었던 일을 하소연했다.

내 이야길 듣던 경찰관 두 명 중 한 분이 제법 유창한 영어로 저 아래 보이는 항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곳에 가서 사건을 접수하라고 했다.

리스본에서는 카드 단말기가 없는 택시는 있을 수 있지만 미터기가 없는 택시는 존재할 수 없고, 더군다나 픽스된 요금이라는 건 절대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택시 스캠을 당한 거 같다면서 경찰서로 가 리포트를 작성하길 권했다.

해서 우리는 서둘러 아래로 내려왔고, 우리가 출발했던 크루즈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 영어로 대화가 되는 경찰관님을 만났고, 우리가 당한 일을 소상히 반복했다. 

그는 내가 찍어둔 사진을 보고 아주 잘했다고 말하며 사건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다.

자동차 번호판을 적고, 택시 차량번호도 적고, 내 여권을 보고 피해자 인적사항도 적고, 아무튼 그렇게 그곳에서 대략 30분 이상을 보냈다.

우리가 조서를 꾸미는 사이 나이 지긋하신 부부 한쌍이 들어와 리스본 대성당 앞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면서 우리와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우리를 담당하는 경찰관 왈 "리스본은 대도시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정말 이런 일을 당하는 여행객들에겐 유감입니다. 하지만 이 조서를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 보험회사에 청구하세요. 이건 단순한 절도가 아닌 사기라 분명 보험 처리가 될 겁니다."란다.

 

조서를 다 마치고 우린 경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거길 떠나왔다.

일단 나쁜 택시기사를 만난 건 불운이었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행운이 있듯 불운도 있을 수 있는 법, 그걸로 우리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우린 곧 그 사건 혹은 사고를 잊었다.

다시 리스본 구경거리에 눈을 돌리며 우린 리스보아 카드를 교환하기 위해 바우처를 꺼내 들고 인포로 향했다.

항구 가까이로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집, 상점, 파두 뮤지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