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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리스본 여행 둘째 날 1(23/10/31)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벨렝탑' '제로니무스 수도원'

다음 날 아침, 난 일찍 눈이 떠졌다.

전날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본 후 내 계획을 알았던 남편은 지레 겁을 먹고 내게 말했다.

"당신 혼자 다녀올래?"

난 냉큼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 난 혼자 그곳으로 향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남편과 나는 산책을 즐기는데, 난 워낙 걸음이 빠른 반면 남편은 걸음이 느린 편이라 가다 보면 내가 늘 저만치 앞서게 된다.

게다가 남편이 조금 아픈 후론 더욱 걸음이 느려져 같이 보폭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졌다.

걷는 게 운동이 되려면 조금 빠르게 걷는 게 좋다고 하는데, 너무 느리다 보니 운동도 안 되고 답답해지니 내겐 조금 고역이 되곤 했다.

그랬는데 혼자 다녀오라니 솔직한 심정으로 난 '쌩큐'가 된 거다.

잽싸게 호텔을 나와 고작 걸어 3분 거리인 그곳으로 향했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는 7시가 오픈 시간이라 혹시나 싶어 난 15분 전쯤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해서 난 주변을 조금 돈 다음 제자리도 돌아왔다.

사위가 적막인 거리를 걷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그토록 분주했던 곳이 적막감에 뒤덮여 있는 걸 보는 건 신기함이고 짜릿함이다.

이 거리를 통째로 손에 넣은, 점령한 듯한 그 기분! 

아마도 그래서 도시를 점령하던 옛 시절 장군들이 그토록 그것에 힘을 쏟았을 듯싶다.

통쾌함과 이른 아침의 상쾌함이 동시에 날 휘감았다.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난 맨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다 해서 10명이 안 되는 그날의 첫 손님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 리스보아 카드를 가져다 댈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처음으로 리스보아 카드 사용과 무료 혜택을 누렸다.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시 기분이 묘해졌다.

구경을 마치고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돌아가는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좀 의아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에 미쳤다. 

'보통은 사람 수가 많다 보니 사진 찍고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겠지. 정해진 시간이 있을 테고.'

그렇게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왔다.

사람 마음이 그랬다.

이미 많은 이들이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원하는 걸 끝내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나 긴 줄을 선담! 별 것도 없구먼!'

 

난 호텔로 돌아왔고, 남편과 함께 이번엔 오늘의 하일라이트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가기 위해 늘 그렇듯 간식과 과일을 준비해 호텔을 나섰다.

지하철과 지상철이 혼합된 '메트로'를 이용해 그곳으로 향하는데, 우리가 가려는 곳에서 딱 하차를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아 우린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내려 걸으려고 했다.

헌데 어떤 여자분이 우리가 내리려던 곳보다 덜 걸을 수 있다면서 하차할 정류장을 다른 곳으로 알려주셨다.

우리는 그곳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건 '발견기념비'였다.

TV에서 봤던 대로 뭔가 찬란한 꿈을 실현하려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념비에 새겨진 인물은 엔리크 왕자를 비롯해 바스쿠 다 가마 등 내로라하는 포르투갈의 탐험가, 항해가들이 즐비했다.

 

벨렝탑은 왕이 탐험을 나서는 이들을 배웅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환영, 환송을 했으려나?

 

그곳을 벗어나 곧 우린 벨렝탑에 도착했다.

리스보아 카드를 보여주며 입장하려고 하니 리스보아 카드를 인포에 가서 표로 교환해야 한다고 했다.

해서 난 잽싸게 달렸고, 리스보아 카드를 표로 바꾼 후 우린 곧 입장했다.

해자를 거쳐 벨렝탑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좁디좁은(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한쪽은 기다려야 하는) 계단을 통해 위로 향했다.

높은 곳이다 보니 저 멀리 테주강을 조망할 수 있고 그밖에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가 입장할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게 보였다.

 

왼쪽이 제로니무스수도원 입장을 위한 줄이고, 오른쪽은 교회 관람을 위한 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신기한 악기(마요르카에서도 본 적 있다!) 연주를 하시는 분의 음악도 감상할 수 있었다.
드디어 입구 바로 코 앞까지 왔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었다.

걷고 또 걸어 그곳에 도착하니 어마어마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줄 서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니 그래도 이곳은 워낙 명소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엿보였다.

남편을 줄에 세우고 혹시나 싶어 난 좀 떨어져 있는 '티켓 카운터'로 향했다.

아까처럼 리스보아 카드를 보여주고 표로 교환을 해야 하나 그게 궁금해서였다.

이번엔 다행히도 리스보아 카드만 보여주면 입장이 가능하단 이야길 듣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줄을 서 기다린 적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이곳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랜 기다림 끝에 입장이 허락된 곳이라는 걸 먼저 밝혀둔다.

우리는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 드디어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얼핏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느껴진 그런 감흥을 받았지만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알함브라 궁전 역시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더 적은 소수를 입장시키는 탓에 그렇게 줄이 길었던 이유라는 걸 곧 간파했다.

그만큼 수도원을 관람하며 느끼는 감흥이 여유로웠다

한 마디로 길고 긴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고, 남편 역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