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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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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도전해 본다! 문피아 공모전 내가 꿈꾸는 세상은 정의가 숨 쉬는 세상이다. 사회악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혐오하고 지양하려는 스텐스를 유지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아무리 이해시키려 해도 이해하지 않으려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에겐 가끔 응징이란 처벌도 하사하면서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세상. 해서 난 늘 그런 류의 웹소설을 쓴다. 아무래도 내 성정과 지금까지 은연중 내게 깃든 타성을 벗어나지 못해 난 요즘 세대들이 즐기는 그런 웹소설은 쓸 재간이 없다. 그런 이유로 난 내 방식대로 사회를 정의롭게 구현하는 이야기를 즐겨 쓴다. 그렇게 완성했던 웹소설이 몇 편 된다. 물론 상업적으로는 성공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웬 고구마냐는 질타도 받아봤다. 난 뭘 하든 개연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 갑자기 건너뛰거나 말도 안 되는 ..
'꼰대질' 소리 들을 각오하고 쓰는 글(참을 수 없는 말과 글의 향연을 접하는 심경)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일상화된 비속어와 욕설에 대해선 언젠가부터 면역력이 생겼다. 흔쾌한 건 절대 아닌데, 암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된 듯싶다. 하지만 소리와 달리 내 눈으로 직접 읽게 되는 글에서 보이는 비속어와 욕설엔 관용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그렇다. 어쩌면 한때 학생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던 사람이라 다른 이들보다 더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게 심한 비속어와 욕설에 대해 일종의 '포비아'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지 누군가 내게 욕설을 퍼붓는다면 난 기절할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욕지거리하는 사람을 보면 혐오스럽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그랬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리는 지나가지만 글은 지속성이 있어 글로 된 막말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게 될까? 난 노마드를 꿈꾸고, 얽매임에서 벗어나 계속 뭔가 궁리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해서 깊지는 못해도 다양한 것에 폭넓게 관심을 갖고 있고, 늘 꿈을 꾸며 창조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딘가로 떠나는 나'를 실현하기 위해 늘 모색하는 거다. 내게 깊이 각인된 유전자는 '방랑'과 '모색'이다.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안의 '방랑'을 잠재우는 몸짓이자 '모색'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 외 실질적으로 난 어딘가로 떠나며 나의 '방랑'과 '모색'을 현실화한다. 원래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요즘같이 변덕스러운 날씨가 많이 힘들어진 건 최근의 일이긴 하다. 더불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자각하고 이를 타파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 결과 요즘 계속..
마음이 통한다는 것(다양한 친구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선 보통 친구의 기준이 동년배로 한정돼 있다. 또한, 주로는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를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지난번 내가 언급한 친구의 개념도 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친구라는 건 나이를 떠나 마음이 통하는 관계에 통용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외화를 보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분과 어린아이가 아무런 스스럼이나 구애 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마음이 통하는 걸 꽤 보게 됐고, 아마 그때부터 외국에 대한 나의 동경은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말이다. 해서 오늘은 또 다른 의미(?)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캐나다로 이민 간 후 타국에서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혹은 한국말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옛 친구가 좋은 이유 내게 친구는 두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추억 속의 친구, 또 하나는 편안한 친구다. 추억 속의 친구를 얘기하자면 떠오르는 친구들이 참 많다. 날 문학으로 이끌어준 친구, 내게 침착함이라는 걸 가르쳐준 친구, 격변해 날 놀라게 했던 친구 등등. 그중 한 때 개그우먼이 돼 날 찾아왔던 초등학교 친구도 있다. 그 시절부터 입담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겼었는데 대학생이 된 후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친구 왈 "야! 너 왜 이렇게 변했어? 그것도 완전히?"라고 말해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 앞에 나와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장기자랑했었던 내 모습만 기억하나 보았다. 해서 내가 꽤나 발라당스러운 여자로 변했을 걸로 짐작했었나 보았다. 그러면서 그래..
술에 너무도 관대한 대한민국(술 권하는 사회?)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대한민국의 법체계에 대한 불만은 차고도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날 몹시 심란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음주 후 벌어지는 모든 범법 행위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일이다.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음주 후 사건 사고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대한민국 혹은 지나친 관대함을 보여주시는 우리 판사님들의 판결의 근거는 무엇일까?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만취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감경하지는 않는다고 하고, 실제로 조두순 판결 후 주취 감경 논란이 불거져 2012년 성폭행 사건 경우에는 형 감경을 의무로 두지 않는다는 법이 통과됐다고는 하지만, 그저 허울일 뿐이라는 느낌은 과연 나만의 것일까?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는 차라리 음주를 빙자했다고 음주 후 사건 사고에 ..
나에 관한 이야기 1(내가 여행에 목매는 이유) 어린 시절부터 난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책임감에 허우적거려왔다. 이후 그 책임감은 내 삶에 깊이 각인돼 60 평생을 나와 함께 했다고 믿는다. 난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 중심엔 할아버지 뻘 되는 아버지가 있었고, 척추장애인이신 어머니가 있었다. 그마저 아버지는 가끔 집에 들렀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어렴풋이 난 내 환경이 뭔가 이상하고 다른 집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외삼촌과 어머니와 살았다. 물론 내겐 여동생도 있었고,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주는 언니도 있었다. 내 기억에 외삼촌은 날 무척 아끼고 사랑했지만(때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던 날 위해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 젖을 짜 배달해줬다고!),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외삼촌은 자기 뜻이 전..
네이버 챌린지에 글 올립니다. 카카오 스테이지 공모전이 끝나고 나니 이전에 써놨던 웹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해서 이번엔 네이버 챌린지에 그걸 올리고 있다. 이번엔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내 맘대로 그렇게 올리지 말고 조금 전략적으로 접근해야겠다! 이렇게 맘을 먹고 올리고 있는데... 글쎄다! ㅎ 웹소설을 플랫폼에 올리다 보면 나보다 훨씬 적게 올렸음에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환호받는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부럽기도 하고, 그 소설엔 있는데 내 소설엔 없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나 질을 떠나 분명 전략적으로 도 우위를 점하는 작품들을 또 목도하게 된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쏟아지는 홍수와도 같은 작품들이 어떻게 다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분명 이전까지 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