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보통 친구의 기준이 동년배로 한정돼 있다.
또한, 주로는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를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지난번 내가 언급한 친구의 개념도 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친구라는 건 나이를 떠나 마음이 통하는 관계에 통용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외화를 보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분과 어린아이가 아무런 스스럼이나 구애 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마음이 통하는 걸 꽤 보게 됐고, 아마 그때부터 외국에 대한 나의 동경은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말이다.
해서 오늘은 또 다른 의미(?)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캐나다로 이민 간 후 타국에서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혹은 한국말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시작된 블러깅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겐 이런 친구분들이 꽤 생기게 됐다.
그중 기억나는 몇 분이 있는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도 있고 이제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그런 분도 있다.
먼저,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분은 나보다 4살이나 많은 공무원 출신 여자분이다.
언니가 없어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셨던 분 외에는 '언니'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쉽사리 '언니'라는 말이 안 나오는 편인데, 그분에겐 언젠가부터 '언니'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맛난 것을 사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시면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분은 정말 내게 언니같이 따뜻한 분이다.
또 한 분은 차이 많은 오라버니뻘쯤 되시는 남자분이신데, 아내 분까지 함께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사이였다가 나중엔 며느님과 손자 아이까지 만나본 사이로 발전했었다. 늘 내게 호의적이셨고, 나의 심중을 헤아려주신 분이셨는데 지금도 간간히 인사는 드리지만 직접 못 뵌 지는 꽤 됐다.
또 다른 한 분은 내 어머니보다도 연배가 높으셨던 교사 출신 여자분이셨는데, 마치 잃어버렸던 딸을 대하듯 그렇게 살갑게 날 챙겨주셔서 황감할 지경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나이도 잊은 채 대화를 이어나갔던 수많은 시간을 지나 언젠가부터 연락이 안 되더니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을 만나 공감하고 소통했던 그 시간만큼 상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과정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대화를 통해, 글을 통해 잇게 된 인연도 있다.
우연히도 동년배에, 비슷한 감성을 소유했고 취미도 비슷해 보여 마음이 통하는 그런 친구다.
그러고 보면 원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친구라는 건 '선을 넘지 않되 편안한 관계'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통하는 그런 관계에 대한 통칭이 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소통'이기에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