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정확히 25년 만이다.
97년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친구가 살고 있는 독일 마인쯔를 거점으로 해서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 이곳저곳을 둘러봤었다.
그 중에 로마가 있었다.
로마! 물론 고색창연한 엄청난 유적지에 감흥됐지만 당시 로마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저 조상의 혜택을 받은 나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더러운 거리, 시끌벅적함, 규칙 없어 보이는 관행 등등이 문화유적에 눈을 돌리게 하기보단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로마는 아니지만 베네치아에서 받은 충격(?) 또한 이탤리에 대한 전반적인 내 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식전빵을 가져다 주지 않아 묻자 "예따 먹으렴!~" 하는 것처럼 던지듯 건네던 웨이터의 행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해져 이번에 들른 로마는 97년 당시 다소 조급하고 황망했던 내 심사완 다르게 여유로움이 지배한 게 확실했던 듯하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보려 한다.
먼저 남편과 나는 코로나시국 여파로 많이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공항이면 어쩌지!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각자 짐이 아닌 남편 것과 내 것을 섞어 큰 수트케이스 2개를 꾸렸다.
그리고 핸들링 가방에 정장도 준비하고 나름 만반의 태세를 견지한 채 이탤리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에 도착했다.
그 전에 복잡함을 줄이고자 호텔에 픽업서비스도 신청했다. 비용은 55유로.
생각보다 한산한 공항에 먼저 놀랐다면 입국절차가 엄청 짧고 간편했다는 게 두 번째 놀라움이었고, 짐 또한 아무 문제 없이 비교적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우리를 감동케 했다.
그리고 수월하게 우릴 픽업할 기사분을 만나 크루즈 여행을 위한 신속항원검사(미리 필요한 걸 온라인으로 다 작성해 준비해두었다!)가 필요하니 시간을 조금 달라 요청했다. 신속항원검사 비용은 한 명당 20유로였다.
이때만 되도 10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건 몰랐지만 일단 한 10분 정도 시간이 걸려 신속항원검사 결과 <네커티브>를 받아 손에 넣었다.
그리고 편안하게 호텔로 향했고, 기사분이 호텔 리셉셔니스트를 통해 65유로를 요구하는 걸 보고 좀 심한 거 아닌가란 생각은 했었지만 일단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걸 감안해 순순히 지불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 이후부턴 호텔 데스크에 짐을 맡기고 로마구경 맛보기에 나섰다. 97년보다 나이는 훌쩍 먹었지만 체력은 그에 비례 월등해졌다는 굳건한 믿음과 함께 말이다.
호텔에서 가까운 베네치아광장을 거쳐 교회도 들렀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우선은 교회의 위용과 치장에 감탄을 연신 내뱉게 되지만 만사 그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감흥이 사라지곤 한다. 많아도 너무 많은 교회와 비슷비슷해 보이는 모습에 말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 아직까지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잽싸게 스캔하면서 역시 유럽은 기독교 문화지!를 다시금 상기했다.
걷고 또 걸어 우린 중심가로 향했고 우선 가장 급한 유심칩(팀 Tim)부터 구입했다. 둘 다 마련할 필요는 없을 듯해 남편 전화기에만 새 유심칩을 장착했고 '이제 완전 준비됐어!~' 하면서 거리로 향했다.
헌데 난관이 곧 찾아왔다. 출출해 점심을 먹으려고 미리 검색해간 곳을 찾으니 몽땅 문을 닫아버렸다. 해서 우린 할 수 없이 구글검색을 통해 한 식당으로 향했다.
맛은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이탤리 여행이 처음인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파스타문화의 본고장을 찾은 흥분감이 살짝 엿보였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우린 유명 젤라또 가게다운 포스가 역력한 한 곳을 찾았다.
줄을 서 있다 내 순서가 됐는데 표를 달란다. 아차! 저기서 먹을 걸 말하고 돈부터 내는 거였구나!를 깨달았다. 다행히 줄이 그리 길지는 않아 금방 젤라또를 손에 쥐어들었다.
아! 역시 맛있다! 이탤리에선 1일 1 젤라또라지?
하면서 맛나게 냠냠 먹었다.
어쩌다 보니 판테온까지 오게 됐고, 그곳 구경을 마치고 또 어쩌다 보니 유명 커피숍 '타짜도로' 앞에 서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여기 무지 유명한 데야! 어서 에스프레소 맛 보셔!" 했더니 완전 기대에 부푼 표정.
난 호텔로 돌아가 먹을 빵 하나를 샀다. 그곳 시그네처라는 '마리또조 생크림빵'을.
그리고 트레비분수를 거쳐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조금 쉬다 가벼운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선 우리는 별 시장기를 느끼지 못해 다시 또 젤라또를 사먹고 근처를 조금 산책하다 금방 호텔로 복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비록 둘이 동시에 새벽 일찍 눈이 떠져 잠시 핸드폰놀이하다 다시 잠들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