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의 2014년 영화 ‘스물’.
파릇파릇한 배우들을 보는 기쁨과 함께 마냥 미래가 밝아 보이지만은
않지만 영화에 나온 대로 아직 뭔가를 많이 할 수 있는 나이므로
그래도 찬란하달 수 있는 스물의 보고서를 관람한 후 내 ‘스물’을
떠올렸다.
내 ‘스물’은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 지독한 사랑의 열병, 그것으로
점철된, 무모하달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영화 속 그들처럼 나 역시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단 바로 다음날 그와
다시 볼 계획에 몰두했고, 그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었다.
돈이 없다는 그에게 떡국을 사주고 난 라면을 먹으면서도 행복에 겨웠었고
그와 헤어져 뒤돌아선 그 순간 이미 그를 그리워했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기대감에 가슴이 마구 콩닥거렸었다.
그는 내게 온 우주, 아니 우주 밖 끝을 알 수 없는 그 모든 것이었고
그로 인해 기뻤고, 슬펐고, 아팠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행복하기보단 더 목마르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세상에 오직 한 가지 사랑만 있는 걸로 알았던 내 나이 스물.
영화 ‘스물’은 장면 장면이 다 너무도 사실적이라 참 신선했다.
내가 좋아하던 팝송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마냥 미화되지 않은 스물이라 참 좋았다.
더불어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며 가슴 뛸 수 있음을
알게 돼 무엇보다 신기했다.
하지만 영화 ‘스물’은 내게 약간의 쓸쓸함도 안겨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는 나이 ‘스물’을 지나온 대개의 이들에게 이 영화가
마냥 훤한 웃음대신 다소의 쓸쓸함을 안겨줬다 할지라도 난 이 영화를
비난하는 대신 좋아하기로 했다.
왜냐면 이미 나를 비롯한 대개의 이들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란
노래의 의미를 알고 있다고 믿기에 말이다.
더불어 사랑의 여러 빛깔을 알아버렸다고 믿고 있기에 말이다.
스물을 추억할 수 있게 된 지금이 그때보다 나쁘지 않다고 믿기에 말이다.